2014년 9월 12일 금요일

창경궁 [昌慶宮] Changgyeonggung



창경궁 [昌慶宮] Changgyeonggung



<홍화문>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창건 이래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면서도 궁궐로서의 격과 위상을 지켜왔던 창경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순종은 즉위하자 거처를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이 일을 계기로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융희 3년(1909)에 개원하였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켰다. 또한 중궁전인 통명전 북쪽 언덕, 즉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하였으며,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놓았다.








<창경궁 매표소>









 
<옥천교>
말라버린 다른 궁궐의 금천과 달리 항상 맑은 물이 얇게 흐른다. 
봄이면 옥천교 일대에 피는 앵두, 자두, 살구꽃으로 인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명정전>
경복궁, 창덕궁의 법전과 달리 동향을 하고 있는데다 단층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문정전>

문정전(文政殿)은 왕이 신하들을 접견하고 정사를 보살피는 편전으로 경복궁의 사정전이나 창덕궁의 선정전과 같은 기능을 하던 건물이다.
문정전 앞뜰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음에 처하게 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숭문당>

숭문당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자리가 모호하고 주변 건물에 비해 규모도 작지만 고풍스럽고 
당당한 느낌의 전각이다.






<함인정>

함인정 내부에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도연명의 「사시」(四時)가 계절별 방향에 맞춰 
주련(柱聯)으로 걸려 있다.
春水滿四澤
봄에 물은 못마다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여름 구름 묘한 봉우리 많기도 해라

秋月楊明輝
가을 달은 높이 떠 밝게 비추고

冬嶺秀孤松
겨울 언덕 소나무의 외로움이 아름답구나








<경춘전>

주로 왕비와 세자빈이 머물렀던 곳으로 소혜왕후 한씨, 인현왕후 민씨, 혜경궁 홍씨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또한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환경전>

경춘전과 함께 내전의 중요한 건물로 국왕이 늘 거둥했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다.












    




<통명전>

내전의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통명전은 서쪽의 산자락을 화계로 처리하고 그 아래에는 연당을 조영하여 건물이 지닌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음산한 일화가 담겨 있고 왕비의 침전이기에 용마루가 없다.









<양화당>

통명전에 버금가는 창경궁 내의 중요한 내전 건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환궁할 때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넓은 기단이 통명전의 월대와 통하게 되어 있다.









<영춘헌과 집복헌>

궁녀들이 살았을걸로 추정함









<춘당지>

표주박처럼 생긴 창경궁 연못 중 위쪽 작은 연못 부분이다. 아래쪽의 큰 연못 자리에는 원래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짓던 내농포가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연못으로 개조되었다.







<관천대>

천문을 관측하던 곳








<성종태실비>








<팔각7층석탑>








<풍기대>








정보는 [네이버 지식백과] 
창경궁 (답사여행의 길잡이 15 - 서울, 초판 2004, 5쇄 2009, 돌베개) 퍼옴




그외 창경궁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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