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昌慶宮] Changgyeonggung
<홍화문>
창경궁(昌慶宮)의 처음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1418년 왕위에 오른 세종이 생존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이었다.
창건 이래 끊임없는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면서도 궁궐로서의 격과 위상을 지켜왔던 창경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부터이다. 순종은 즉위하자 거처를 경운궁(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이 일을 계기로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해부터 창경궁의 전각을 헐고 그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융희 3년(1909)에 개원하였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켰다. 또한 중궁전인 통명전 북쪽 언덕, 즉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하였으며,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놓았다.
그리고 내친김에 1911년에는 궁궐의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어 궁궐이 갖는 왕권과 왕실의 상징성을 격하시켰다. 또한 중궁전인 통명전 북쪽 언덕, 즉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자경전이 있던 터에 일본풍의 박물관을 건립하였으며, 1912년에는 지금의 율곡로 개설을 시작하여 창경궁과 종묘를 단절시켜놓았다.
<창경궁 매표소>
<옥천교>
말라버린 다른 궁궐의 금천과 달리 항상 맑은 물이 얇게 흐른다.
봄이면 옥천교 일대에 피는 앵두, 자두, 살구꽃으로 인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명정전>
경복궁, 창덕궁의 법전과 달리 동향을 하고 있는데다 단층이어서 어딘지 모르게 단정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문정전>
문정전(文政殿)은 왕이 신하들을 접견하고 정사를 보살피는 편전으로 경복궁의 사정전이나 창덕궁의 선정전과 같은 기능을 하던 건물이다.
문정전 앞뜰에서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음에 처하게 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숭문당>
숭문당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 자리가 모호하고 주변 건물에 비해 규모도 작지만 고풍스럽고
당당한 느낌의 전각이다.
<함인정>
함인정 내부에는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도연명의 「사시」(四時)가 계절별 방향에 맞춰
주련(柱聯)으로 걸려 있다.
春水滿四澤
봄에 물은 못마다 가득하고夏雲多奇峰
여름 구름 묘한 봉우리 많기도 해라
秋月楊明輝
가을 달은 높이 떠 밝게 비추고
冬嶺秀孤松
겨울 언덕 소나무의 외로움이 아름답구나
<경춘전>
주로 왕비와 세자빈이 머물렀던 곳으로 소혜왕후 한씨, 인현왕후 민씨, 혜경궁 홍씨가 이곳에서 승하했다.
또한 정조와 헌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환경전>
경춘전과 함께 내전의 중요한 건물로 국왕이 늘 거둥했던 곳이며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했다.
<통명전>
내전의 건물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통명전은 서쪽의 산자락을 화계로 처리하고 그 아래에는 연당을 조영하여 건물이 지닌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음산한 일화가 담겨 있고 왕비의 침전이기에 용마루가 없다.
<양화당>
통명전에 버금가는 창경궁 내의 중요한 내전 건물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환궁할 때 이곳을 거처로 삼았다고 한다. 넓은 기단이 통명전의 월대와 통하게 되어 있다.
<영춘헌과 집복헌>
궁녀들이 살았을걸로 추정함
<춘당지>
표주박처럼 생긴 창경궁 연못 중 위쪽 작은 연못 부분이다. 아래쪽의 큰 연못 자리에는 원래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짓던 내농포가 있었는데 일제에 의해 연못으로 개조되었다.
<관천대>
천문을 관측하던 곳
<성종태실비>
<팔각7층석탑>
<풍기대>
그외 창경궁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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